추억의 기차를 타고
골목 축제 현장으로
저는 오늘 이 한 장의 사진으로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언뜻 보기만 해도 추억이 팍팍 묻어나지 않나요? 기억도 감감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를 떠올려 보더라도
'달고나'를 시도(?)해서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엔 드디어 성공했거든요. 그래서 '추파춥스' 사탕까지 선물로 받았답니다. 그러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요. 하긴, 감천문화마을에
가지 않더라도 이런 추억의 놀이쯤은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겠지만 어째 그곳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그 어떤 느낌이 남아 있어 동네 마실 가듯 편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네요.
자, 그러면 칙칙폭폭 추억의 기치를 타고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 현장으로 들어가 볼까요?
감천문화마을 입구 풍경입니다.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2014년 기준 138만 명)이지만 골목 축제 기간은 또 남다른지 정말 많은 사람들로 북적댑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말할 것도 없고요, 교복 차림의 남녀 학생들까지 남녀노소를 망라하고 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이런저런 인연으로 감천문화마을을 방문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그때마다 느낀 건, 마을이 늘 변화하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그 변화가 어떤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마을의 역동성만큼은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올해(2016년)로 6회째를 맞은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 역시 눈에 보이지 않은 작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축제의 처음부터 끝까지, 즉 기획 단계부터 마무리까지를 주민
스스로의 힘으로 치러낸 것입니다. 축제를 앞두고 '마을대학'을 열었고, 그곳에 모인 주민들이 직접 축제를 준비하고 기획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멋져 보였습니다. 그게 조금은 서툴더라도 말입니다.
올해 그들이 준비한 축제 내용을 한 번 살펴볼까요? 리플렛으로 표현되는 게 전부는 아니지만 큰 윤곽을 그려보기엔 목차만큼 편한 것도 없을 것 같아서 살짝 가져와 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골목 축제 탐험에 나섰습니다. 초등학생 같아 보이죠? 맞습니다. <프린지 페스티발 어워드>에 출연한 초등학생 공연이 한창입니다. 평소 갈고 닦은 춤과 노래를 선보이는 자리였는데요,
이때만큼은 TV에 나오는 걸 그룹 못지않은 열정으로 흥을 돋웠습니다. 초등학생뿐 아니라 청소년 팀도 별도의 경연(프린지 페스티벌 어워드/중고생)을 꾸렸나 봅니다. 현수막에 적혀 있는 참가 팀 숫자만
봐도 꽤 높은 열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골목 축제 부대행사로 마련된 다양한 체험 부스가 시작되네요. 7080 추억이 시작되는 건가요? 어른들에겐 낯익은 '추억의 교복'을 입은 중년의
아저씨가 교련복까지 들고 호객 행위를 합니다. 어랏? '공포의 완장'도 잊지 않고 챙겼네요. 젊은 세대들에겐 너무나 낯선 풍경이겠지만 50대만 되어도 익숙한 '노란 완장'이랍니다.
그때 그 시절, 학교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머리 길이며, 복장 단속을 시시콜콜 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노란 완장 찬 선도부는 권력 그 자체였으니까요.
추억의 교실도 재연했군요. 교실 한가운데 석탄을 때던 난로 위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양은 도시락은 나이 든 어른들에겐 한겨울의 추억 같은 것이지요.
행여 도시락밥이 타지 않을까 쉬는 시간마다 아래 위를 바꿔주는 학생들도 있었는데 냉난방 시설을 갖춘 교실에서 생활하는 요즘의 아이들은 상상하기 힘든 한 장면일 겁니다.
감천문화마을에서 올 들어 새로 시판하기 시작한 '황토 가마 소금' 부스와 마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마을 미술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주인공(어린왕자, 물고기 등)을 한정
판매하는 곳도 등장했습니다. 마을 축제엔 주민뿐 아니라 마을 입주 예술가들도 함께하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들 입주 작가들로부터 기량을 전수 받은 주민들도 솜씨 자랑을 한껏 뽐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있어서 저절로 발걸음이 멈췄습니다. '와우~' 탄성이 절로 나오는 묘기가 펼쳐지고 있네요. 슈퍼맨 복장을 한 저 분, '칼춤'에다 '불쇼'까지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진 속에 보이는 저 횃불 봉을 입 안에 밀어 넣었는데, 아~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군중을 빠져 나와 이번에는 개막식 행사가 치러진 무대로 이동했습니다. 이날따라 <감천2동 주민 노래자랑-떴다! 우리 동네 가수왕> 순서를 앞두고 있어선지 객석은 주민들로 가득 찼습니다.
골목 여기저기를 관광객이 차지한 것과 달리 이곳은 온전히 주민들 차지였습니다. 내가 아는 이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그 중에서 왕중왕을 가린다는 게 그들에겐 또 다른 즐거움 같아 보였습니다.
주민 잔치를 뒤로하고 다시 골목 축제 탐험에 나섰습니다. 감천문화마을의 히어로 '어린왕자와 사막 여우' 조형물 앞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섰습니다. 평소에도 20~30분은 족히
기다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축제 기간이라 30분 이상은 더 기다려야 할 듯싶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어린왕자와 사막 여우 사이에 앉아서 등만 보이는
저 청년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지구에 불시착한 어린왕자와 사막 여우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온 것처럼 마을을 찾은 사람들도 뭔가를 계속 묻고, 답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축제의 장답게 각종 볼거리, 놀 거리도 즐비했습니다. 멀리 안데스에서 날아온 원주민이 들려주는 공연도 사흘 내내 끊이지 않았고, 투호 놀이, 활쏘기 등 전통 놀이마당,
추억의 물지게 코너 등도 준비됐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달고나 할머니'도 보입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부 핀에 침 발라 가며 뽑기에 도전 중입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정말 신기한 것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은 분명 허공 같은데 무언가를 뚫어지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선지 모르겠지만
노랫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마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무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붕과 지붕이 맞닿은 옥상에 차려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런 무대에서 노래하는 소감이 어떻냐고요. 감천문화마을 골목 축제는 이처럼 공연 무대조차도 지형을 담아내느라 색다르게 다가왔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배가 조금씩 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안에는 외부에서 들어와서 크고 작은 식당을 하는 사람도 있고, 마을 사람들이 주인이 되어서 운영하는 마을기업도 있지만 축제
기간에 먹거리 장터도 마려됐습니다. 막걸리에 파전을 주문해서 먹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음식이어서 더 정겨웠습니다. 여전히 옥상 무대에서의 노랫소리는 끊이지 않고 들려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부스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한복을 입은 한 무리가 보입니다. 외국인이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대여해 주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남녀 외국인이었습니다. 아주 색다른 문화 체험이 될 것 같았습니다.
저도 내년엔 아예 한복을 입고 마을 축제를 와 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잖아도 평소 한복 입을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런 때 한복을 입고 마을을 활보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요.
이젠, 정말이지 골목 축제 투어를 끝내야 할 시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행복우체통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저 엄마와 아이들도 충분히 축제를 즐겼겠지요. 어느덧 축제의 떠들썩함도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방향을 잡은 어느 지점이었는데 스태프 조끼를 입은 어떤 분이 관광객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을 만났습니다. 아무런 푯말도 없는 것으로 봐서 새로운 포토 존이 될 것 같은 곳이었습니다.
좀 위험해 보이긴 해도 두 팔을 활짝 펴고 뒤돌아 앉아 있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한 발만 벗어나도 이렇게 고요한 것을 싶었습니다. 그래도 축제는 축제답게 떠들썩 해야겠지만요.
이제 골목 축제 구경을 끝내고 완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다시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주민들이 만들어서 걸어 놓은 것이겠지요. 페트병 미니 화분에 심어 놓은 꽃들이 담벼락마다
앙증맞게 걸려 있습니다. 어쩜 저렇게 예쁘게 가꿔 놓았던지요. 사람들이 마구마구 찾아들어서 생활이 불편할 법도 한데, 큰 잡음 내지 않고 꽃으로 맞아주시는 것 생각하면 감사, 또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 내년 축제 때 다시 뵙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