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바다,
그리고 축제
'부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와 바다, 그리고 축제를 이야기한다. 1996년 여름, 첫선을 보인 '부산바다축제'는 부산의 대표적인 축제 가운데 하나이지만
스물한 해를 이어온 축제치고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초 이 축제를 기획할 때만 해도 여름 바다를 찾은 관광객이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밤 시간대에 각종 공연과 이벤트성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낮뿐 아니라 밤에도 즐길 수 있는 '부산/여름/바다'가 되길 바랐던 마음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도처에 즐길 거리가 널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부산, 바닷가'에 오지 않고서도
보고 즐길 수 것이라면 바다 축제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장을 펼칠 필요도 없지 않느냐는 냉정한 평가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과 해변'이라는 특수 공간을 좀 더 활용할 방안이 진작에 모색됐어야 했다.
그런데, 2016년 부산 바다 축제는 확실히 변했다. 아니 변신하는 중이다. 다이나믹한 나이트 풀 파티(Night Pool Party) 형식으로 선보인 파격적인 개막식이 변신의 신호탄이었다.
관람 위주의 공연 행사를 스탠딩 형식으로 바꿨다. 워터 카니발 콘셉트의 '물의 난장 & Night Pool Party'가 나흘 동안 이어졌다. 해운대 백사장에 개방형 특설 무대가 설치되고,
대형 풀장이 등장했으며, 워터 분사기는 물을 뿜어댔다. 수영복 차림의 관람객에겐 물총이 주어졌다. 그야말로 신나는 한 판 난장이 시작된 것이다.
축제의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들썩여졌다. 산이, 제시, 매드클라운, 정기고, 샵건, 허클베리 피, 슈퍼비, 면도 , 레드 등 출연진 한 사람 한 사람이 무대로 나올 때
마다 객석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심지어 개막을 알리는 부시장조차도 티셔츠에 선글라스, 카우보이모자 차림으로 등장해 물대포를 쏘는 것으로 퍼포먼스를 벌였다.
백사장에 설치된 대형 수조 2개에 미리 입장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백사장과 인근 계단 등에서 지켜보는 사람들까지도 흥이 넘쳤다. 물벼락을 맞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다.
물의 난장과 나이트 풀 파티는 확실히 대성공이었다. 주간과 야간(나이트 풀 파티와 연계) 시간대로 나눠 하루 2차례 진행된 물의 난장은 EDM, 힙합 등 강렬한 비트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물총
싸움을 하거나 대형 살수시설이 뿜어내는 물세례를 맞으며 모처럼 일탈의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나이트 풀 파티는 그날그날의 테마가 있어서 색깔을 달리했다. 유명 웹툰 작가와 DJ들이 등장한 날도 있고,
록 데이(Rock Day)로 열리기도 했으며, 하드락 라이징 밴드로 꾸려지기도 했다.
부산바다축제에 물의 난장과 나이트 풀 파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종래로부터 해 오던 것들을 많이 줄였다고는 해도 각 해수욕장의 밤바다를 꿋꿋이 지킨 브랜드 공연들도 제법 있었다.
백화점식 프로그램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지역주민의 큰 호응에 힘입어 지속되는 행사가 그것들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까진 갖다 붙이지 못하겠지만 연령대에 따라선 그 프로그램을 오롯이 즐기는
모습이 보기 나쁘진 않았다.
예를 들면, 육·해·공군, 해병대 군악 빅밴드가 연주하는 제4회 민·관·군 합동 호국음악회(8월 3일 광안리 해수욕장), 국내 최정상 재즈 뮤지션들의 재즈 라이브 콘서트 '부산 Sea&Jazz 페스티벌'
(8월 5일 광안리 해수욕장), 국민가수 현인을 기리는 가요 경연대회 '현인가요제'(8월 5~7일 송도 해수욕장), 7080 대표가수들이 출연하는 '7080 가족사랑 콘서트'(8월 7일 다대포 해수욕장) 등이다.
그러고 보면 부산문화관광축제조직위원회가 각 해수욕장마다 나름대로 특성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의지가 어느 정도는 맞아떨어진 건 아닐까? 조직위는 전략적으로 ▶해운대 : 10∼20대 체험형 프로그램 중심(비치 풀 파티) ▶광안리 : 광안대교 경관조명과의 시너지를 위한 공연 프로그램 집중 배치 ▶송 도 : 현인가요제 및 연계 프로그램 운영 ▶다대포 : 7080 콘서트 및 지역 청소년 k-pop 경연 ▶송 정 : 서핑 동호인을 위한 송정해변축제 운영 등으로 내세웠다.
이 밖에 눈길을 끈 것은 시민이 직접 만들고 참가하는 시민 참여 프로그램. 특히 청소년 밴드들이 만들어내는 참여형 무대 '부산 중딩 락 페스티벌-우리는 밴드 중2다'(8월 4일 광안리 해수욕장),
한여름 밤 국내·외 댄스 동호인들이 참여하는 댄스파티 'Beach Dancing Together'(8월 5~7일 광안리 해수욕장), 국내 거주 외국인 DJ들이 펼치는 신나는 디제잉 경연 '2016 BeFM Expat DJ Contest'
(8월 6일 광안리 해수욕장)는 특정 연령층과 장르임에도 바다축제의 다양성을 높이는데 한몫했다.
특히 올해 처음 열린 '부산 중딩 락 페스티벌-우리는 밴드 중2다'는 말로만 듣던 중2의 '패기'가 느껴져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한층 높게 전망케 했다. 축제 기간에 앞서 부산지역 중학생 밴드들을
대상으로 한 연주 동영상을 제출한 총 17개 팀을 대상으로 인터넷 투표와 내부 심사를 거쳐 7개 팀을 선발했다. 대천중 'B.R.B', 덕명여중 '아덴트', 동의중 '무시카', 만덕중 '엑스칼리버',
반송여중 '아미쿠스', 여명중 '리와인드', 이사벨중 '원두' 등이 무대에 올라 기량을 뽐냈다. 그리고 부산시는 인터넷방송 바다TV와 유튜브, 유스트림, 다음TV팟, 아프리카TV 등을 통해 페스티벌
전 과정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다만 아쉬웠던 건, 객석에 청소년들이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것. 무대에 오르는 이들만 주인공이 아니라 그들이 들려주는 음악을 함께 즐기고 누리는 것도 이 땅의 청소년들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 전국의 댄스 동호인들 마음을 설레게 한 'Beach Dancing Together'는 광안리 해수욕장 만남의 광장 일대에서 해가 진 뒤인 오후 7시 이후 밤 깊도록 살사(8월 5~6일)와 탱고(8월 7일)의 밤으로
꾸려졌는데 바다축제의 대표적인 체험 행사로 일대 장관을 이루었다. 언젠가, 나도 살사나 탱고를 배울 기회가 있다면 필히 저들 틈에 한 번 끼어 보리라는 희망도 가졌다.
이제 축제는 끝이 났다. 아니 올해의 축제만 끝이 났을 뿐,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바다축제는 계속될 것이다. 다만 그 축제라는 그릇에 무엇이 담기느냐의 문제이고,
무엇을 즐길 것인가라는 선택만 남았다. 언젠가부터 입버릇처럼 말했다. 부산 살아서 좋은 이유는 바다가 지척에 있기 때문이라고. 특히 여름 바다는 멀리 가지 않고서도
내 안방처럼 즐길 수 있는 곳인데,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으니 뭘 더 고민한단 말인가! 내년엔 또 어떤 재미난 프로그램으로 우리를 찾아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