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 시인이 말했다.
“이 길 참 맛있다”고.
갈맷길 축제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힐링 걷기대회에 참여했다. 일찌감치 대회 조직위원회에 참가 등록을 했다. 걷기 대회 하루 전인 걷고 싶은 부산 사무국에서 긴 문자가 왔다.
‘준비물은 걷기 편한 복장, 도시락, 겉옷(생각보다 쌀쌀할 수 있어요), 10분 정도 일찍 오시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 노포동역에서 하차 후 마을버스를 환승해서 타고 오라고 했지만, 노포동 공영주차장까지 가서 노포천을 따라 걸어서 가도 10분이면 스포원파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포원파크에서 오륜본동까지는 약 8.4km. 스포원 광장에 마련된 부스에서 참가 등록을 마쳤다.
준비 체조는
꼼꼼하게
쌀쌀했다. 다누림 하모니카 앙상블과 초대가수 안규성 씨의 축하 공연을 들으며 등록 화인을 하고 간단한 기념품을 받았다.
박경애 강사가 나와서 몸풀기 체조를 했다.
모든 참가자들이 체조를 따라하며 준비를 마쳤다. 걷고싶은부산 박창희 상임이사가 출발 선언을 했다. 참가자들이 깃발을 따라 대열을 이루며 한물교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물교에서 상현마을까지는 태풍 피해 복구가 한창이었다. 그래도 걷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회동저수지가 한눈에 보이는 상현마을 간이 공연장에는 다채로운 문화 공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모하모 하모니카 공연과 고운소리 렐레랄라, 금정문화원 진도북춤놀이, 금어야 놀자의 마당극 등이었다.
참 맛있는 길
공연을 모두 보면 너무 늦을 것 같아 마지막 공연이 시작될 때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른바 회동저수지 둘레길이다.
박정애 시인이 둘레길을 예찬했다. 갈맷길 가운데 이 길이 으뜸이라는 소개도 했다.
휴일이라 그런지 마주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을 보며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했다.
그런데 걸음이 자꾸 늦어졌다. 주변 풍경을 감상하느라 발걸음이 더딘 것이다. 앞서 가던 한 분이 자꾸 걸음을 멈추고 길섶에 있는 휴지를 줍고 있었다.
대연동에서 온 ‘바보’ 하안신 씨였다. 몇 번 부탁하여 명함을 받았는데 ‘바보’라고 적혀 있었다. 왜 바보인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마음은 있는데 버려진 휴지를 줍는 게 참 어렵네요”라고 말했더니 하 씨는 “100만 원을 모아서 이웃을 돕겠다고 시작해서 그 돈을 다 모으면 도울 수 있을까요?
금액이 작아도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야 합니다”고 말했다.
오륜본동에
도착하다
오륜대 마을 음식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 했다. 뜨거운 어묵 하나를 먹으며 속을 데운다. 최근 개발 여파로 이 일대 집값이 10배나 뛰었다고 했다.
한때 부산의 변두리이자 오지였던 곳이 갈맷길이 생긴 이후 이렇게 가치가 상승했다. 꼭 좋은 일인지는 알 수 없다.
오륜본동도 멋진 갤러리와 거대한 음식점, 잘 가꾼 수변공원이 멋진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오륜본동 입구 추어탕 집에서 막걸리를 먹느라 경품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땅뫼산 한 바퀴
오륜본동 수변덱 야외광장 일대는 갈맷길&한국의 길 사진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갈맷길 뿐만아니라 한국의 멋진 길들이 사진으로 게시돼 있었다.
공모를 통해 선정한 부산갈맷길 사진 48점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2점이다. 부산 갈맷길 대상은 영도 흰여울길을 공중에서 찍은 야경인데 과연 멋졌다.
수변 덱을 따라 땅뫼산으로 갔다. 약 1km 정도의 둘레길이 조성돼 있었다. 황톳길이라 맨발로 걸어도 된다고 안내해 놓았다. 땅뫼산에서는 치유의 숲 체험을 할 수 있었다.
힐링과 명상, 음악감상 해먹 체험이 가능했다.
설치해 놓은 해먹에 올라 편백나무를 올려다봤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나무가 푸른 기운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해먹에 누워 몸과 마음을 다독거렸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무와 새가 제 몸무게를 들어올리고/온몸으로 길을 내는 달팽이처럼/한걸음씩 내면의 창을 닦는 시간’
박정애 시인의 시 ‘길의 건반을 밟다’를 가만히 읊조린다. 자비롭고 공손한 길이다.